탕비실에 채워둔 과자가 떨어졌다. 낱개 포장되어 있는 센베이나 케이크 비슷한 식감의 치즈 바, 초콜릿 코팅이 되어 있는 막대 과자 등등은 손님들이 찾아왔을 때 내어오거나 직원들이 심심한 입을 달랠 때 자주 꺼내 먹는, 별거 아니지만 없으면 허전한 간식이었다.
“간식 사 올게. 이참에 필요한 거 다들 말해.”
오늘의 임무를 마쳐 딱히 할 일이 없는 소마가 심부름꾼을 자청했다. 카게하는 아직 외근 중이었고, 나른한 표정으로 어제 자 보고서를 마저 작성하던 치아키가 손을 들었다.
“메모지가 떨어졌어요~ 그리고 전에 샀던 퍼펙트 치즈 과자 맛있었어요~”
“그거 맛있었지. 스이센은...”
소마가 이름을 부르기 무섭게, 도넛 쿠션 위에 몸을 말고 꾸벅꾸벅 졸던 고양이가 우다다 달려왔다. 곧이어 펑 소리와 함께 소마의 품에 매미처럼 안긴 백발의 어린이가 얼굴을 들었다.
“가서 고를래~”
그렇게 말할 거 같긴 했다. 스이센은 밖을 돌아다니고 여기저기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으니까. 어린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소마가 고개를 돌렸다.
“엔쥬, 너는?”
빠르게 타자를 치던 소리가 잦아들었다. 모니터 옆으로 고개를 내민 엔쥬가 입을 열었다.
“전 괜찮습니다.”
“진짜로? 나중에 따로 나가서 채워놓고 그러면 귀찮잖아. 있으면 얼른 말해.”
계속되는 채근에 엔쥬가 뒤늦게 필요한 것을 말했다.
“원두 양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커피 코너에 있는 제품을 사 오시면 되는데 디카페인 표기가 되어있는 건 제외해 주세요.”
“알았어. 디카페인 아닌 걸로.”
엔쥬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저번에 탕비실 물건 채운다고 나갔던 소마가 원두를 잘못 사 왔던 일을 떠올리는 모양이었다.
“표정이 왜 그래. 치아키하고 사무실 보는 게 무서우면 따라오던가.”
가벼운 농담에 발끈했는지 돌아오는 목소리가 약간 뾰족했다.
“무섭겠습니까? 얼른 다녀오기나 하시죠.”
“알았다아. 가자, 스이센.”
“냐아~”
밖으로 나가는 게 신나는지 스이센이 먼저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소마는 얼른 오라고 손짓하는 어린이를 따라 나가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아직 못 물어본 직원이 있었다. 자길 빼먹는다고 뭐라 하진 않겠지만... 뭐, 이럴 때 신경 써주는 게 좋겠지.
“스이센.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무라사키한테 먹고 싶은 간식이나 다 떨어진 사무실 물건 없냐고 물어봐봐.”
“알았어. 소마, 먼저 가면 안 돼!”
“어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뛰지 말고!”
뛰지 말라는 말이 들리지 않았는지 스이센이 우다다 계단으로 뛰어서 내려갔다. 물어보는 것도, 대답도 빨랐던 모양이다. 소마가 미리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를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스이센이 헥헥거리며 달려왔다.
“뛰지 말라고 했잖아. 넘어지면 어쩌려고?”
“안 넘어졌어!”
“무라사키한테 물어봤어? 뭐래?”
스이센이 동그란 눈을 깜빡깜빡했다. 천진난만한 얼굴에는 몸을 빠르게 움직인 직후의 즐거움만 가득했다. 소마는 그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문질렀다.
“설마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아! 잊어버린다고 무라사키가 쪽지 줬어!”
스이센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작은 손바닥을 펼치자 드러난 것은 두 번 접힌 메모지였다. 스이센이 잊어버릴 걸 대비해서 메모지에 써 준 모양이었다. 무라사키가 말하는 본새가 마음에 들진 않아도 꼼꼼한 구석이 있었다. 뭘 써놓았으려나, 하고 메모지를 펼친 소마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내용을 몇 번이고 읽었다.
“뭐라고 써놓은 거야.”
그랬다. 무라사키는 악필이었다. 지렁이도 한 수 접어줄 악필에 소마가 한숨을 쉬었다. 두 가지 물건을 쓴 건 알겠는데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결국 소마는 무라사키에게 전화를 걸었고, 또박또박 썼는데 그걸 못 알아보시냐는 황당한 반응을 들었다.
“됐고. 필요한 물건이 뭐야.”
-A4 용지요. 간식은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진짜로? 와사비 과자 같은 거 사 온다.”
-그거 맛있던데요.
이게 한 번을 안 져주네.
“아무튼 알았어. 좀 이따가 사무실 한 번 올라가. 엔쥬가 너랑 상의할 게 있다더라.”
-알겠어요.
통화가 끝나니 엘리베이터는 이미 다른 층으로 가버리고 없었다. 소마는 뒤통수를 긁적이다가 스이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계단으로 내려갈까. 이번엔 느리게 내려가는 거야.”
“알았어!”
활기찬 대답을 들었지만 안심이 되지 않았다. 소마는 작은 고양이의 손을 가볍게 쥐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스이센은 간식이 빨리 먹고 싶다며 종알종알 입을 움직였다. 마트까지는 걸어서 5분이었지만 호기심 많은 고양이와 함께였기 때문에 방심할 수 없었다.
‘오늘은 필요한 것만 사고 바로 사무실로 와야지.’
그렇게 생각한 게 무색하게도 두 사람은 마트에서 나온 직후 새로 영업을 시작했다는 요거트 아이스크림 전문점에 시선을 빼앗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