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창작전력 <통화>

etc 2019. 4. 20. 02:30

#창작GL전력100

<통화>

 

 

그 애는 수수께끼를 좋아한다.

 

여보세요?”

 

그 애의 이름으로 울려온 전화를 받자 당연히 들려야 할 목소리 대신, 미세한 소음 같은 것만이 들려왔다. 바닥에 끌리는 의자 다리 소리, 종이 넘어가는 가볍고도 조용한 소리, 몇몇 사람이 움직이는지 발소리가 근처에 들렸다가 서서히 멀어지는 소리와 펜이 노트 위에서 움직이는 필기음…… 그 소음을 하나씩 걸러내는 중에 느닷없이 통화가 끊어졌다.

 

총 통화 시간은 233.

 

전공 서적과 필기구를 대충 가방에 쑤셔 넣고 빈 강의실을 나왔다. 노을이 진 교정 사이사이로 수업이 끝난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정문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모두 뒤로 한 채 도서관으로 향했다.

 

학생증을 찍고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관내는 조용했다. 야구잠바를 입은 고학생 몇이 공부하고 있을 뿐이었다, 거리낌 없이 서가를 누비자 오래된 책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내가 찾으려는 번호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233. 성경.

 

오래되어 때가 탄 성경이 서가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걸 다 뒤져야 하나, 하는 생각이 그만 아득해졌다. 맨 윗부분부터 아랫부분까지 눈으로만 책을 훑고 있다가 문득 눈에 띄는 성경에 손을 뻗었다. 손에 들자 엽서를 책갈피처럼 끼워둔 게 보였다. 엽서를 끼워둔 페이지를 펼치자 붉은색 포스트잇 플래그가 붙은 구절이 있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포스트잇을 뗄까 고민하다가 놔두었다. 오래된 성경이라 종이까지 떨어져 나갈까 봐 걱정이 되었다. 엽서에는 옹기종기 모인 한옥마을의 모습이 멋들어지게 그려졌다. 한옥마을 하면 생각나는 곳은 딱 한 가지.

 

전주.

 

그 애와 2학년 때 충동적으로 놀러 갔던 곳이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친구와 놀러 간다는 말을 남기고 바로 짐을 싸 고속버스를 탔다. 어두운 하늘 아래 고속도로를 누비는 버스 창가에는 어지러운 자동차들의 불빛만 가득했다. 잠은 오지 않았다. 커피 한모금도 마시지 않았는데 카페인이 심장에 도는 것처럼 두근두근 거렸다.

 

나 그런 로망 있다?’

 

평소와 같이 시작된 말이었다.

 

스케일 큰 수수께끼 있잖아.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움직이면서 푸는 그런 거. 한번 해보고 싶었어.’

 

그 애는 수수께끼를 좋아했고, 추리소설도 즐겨 읽었다. 안 읽어본 추리소설이 없다고 했다. 여러 작가들의 이름을 대고, 소설의 등장인물들과 그들이 휘말리는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줄 때마다 유순한 눈동자에는 별빛이 감돌았다.

 

나는 책을 싫어했다. 기나긴 글과 어려운 속임수 같은 건 질색이었다. 수수께끼도 잘 못 풀었다. 어렸을 때부터 작은 마술 트릭 하나 이해하지 못해 울상 짓던 나였다. 행간 사이의 미묘한 의미라느니 그런 건 전혀 몰랐다.

 

네가 풀어주면, 소원 하나 들어줄게.’

 

그런데도 그 애의 제안은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마법 같았다.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자 그 애가 꽃망울 터트리듯 웃었다.

 

 

고속버스터미널 근처 모텔에서 잠을 자고 아침 일찍 시내 버스를 타고 한옥마을로 향했다. 겨울이 완전히 물러나고 봄이 만발한 한옥마을은 생기로 가득했다. 잘 닦은 길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주말에 꽃이 피는 봄이니 예상 가능한 인파였다.

 

한옥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며 걷던 발걸음이 어느새 멈췄다. 작은 교회 앞이었다. 전에 여행 왔을 때 이 근처 숙소에서 묵었었다. 한옥 마을 근처에 큰 성당이 하나 있긴 했지만, 그곳은 아니었다. 그 애의 부모님은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그 애는 신앙을 믿는 것 같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부모님에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아니, 그냥 내 생각일수도 있다. 여기가 아니면 성당을 가봐야겠지. 확신이 어느새 사그라드는 것을 느끼며 나는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한옥마을 인근에 있는데도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은 건지 휑했다. 교회 목사 같은 사람은 없었다. 목사? 간사라고 해야 하나?

 

나는 널찍한 의자에 어색하게 앉아보았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 앉아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래. 나는 무교였다. 솔직히 교회 안에 앉아있자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어쩌면 내 예상이 틀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교회 안에 그 애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5분을 더 앉아서 기다리다가 나가려는데, 뽀글뽀글 머리를 볶은 중년 여성과 마주쳤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3초 동안 얼은 채 눈동자만 굴렸다. 중년의 교회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은 어리둥절한 채, 내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 친구를 좀 만나기로 했는데요.”

그러셨어요?”

그런데 약속 시간이 엇갈린 것 같아서, 가볼게요.”

 

그대로 후다닥 자리를 뜨려는 데 등 뒤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 설마 웨이브한 여자분?”

 

나가려는 몸이 딱 굳을 수밖에 없었다.

 

관계자분은 가방 하나를 가지고 왔다. 낮에 생긴 분실물인데 낮 동안 교회 방문한 사람이 체구가 작고, 갈색 웨이브 머리의 여자애뿐이라고 했다. 혹시 모르니까 확인해보라고 해서 가방을 열어보았다. 작은 수첩과 손바닥만 한 거울, 막대사탕이 들어있었다. 수첩을 펼치고 확신했다.

 

그 애가 놔두고 갔나 봐요. 제가 돌려줄게요.”

 

수첩에는 짧은 주소 한 줄이 적혀져 있었는데 그 애의 글씨체였다. 살짝 옆으로 기울어지는 글자들과 날카롭게 끝이 찍히는 숫자들이 그랬다.

 

 

스마트폰으로 주소를 검색하자 호수의 정경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이번에 읽었던 책의 탐정이 호수 근처에 위치한 산장에서 벌어지는 살인 미스터리를 해결했다며 신나게 이야기해줬던 기억이 떠올랐다. 주소 근처에 산장이 있는지 검색하자 과연, 있었다.

 

로맨틱한 장면이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채웠지만 애써 구겨버렸다. 그럴 일은 없다. 그 애는 수수께끼를 풀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내 소원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입에 담을 소원은 앞으로도 종종 이렇게 수수께끼를 내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냥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주소로 이동하며 나는 그 애와 함께한 전주 여행을 떠올렸다. 둘이서만 간 것도 아니었다. 과 친구들 여럿이서 술기운에 의기투합해서 우르르 몰려갔다. 맛있는 거 먹고, 사진도 찍고 술도 마시고 숙소에서 재밌게 놀았다. 그 때 그 애와 있었던 순간은 단 한 번뿐이었다.

 

밤에 담배 피우러 나갔을 때. 바람이 차서 벌벌 떨며 혼자 담배를 태우고 있자니 서러움이 몰려오는데, 그 애가 담요를 가지고 곁에 와주었다. 촌스러운 체크무늬 담요를 내 어깨에 둘러주고 자기도 몸에 두르더니 밤바람이 좋다고 했다.

 

밤바람이 좋네, 라고.

 

나는 그 한 마디에 전주를 영원히 잊지 못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부끄럽지만 진짜 그렇게 생각했다.

 

이렇게 또 올 거라고는 예상 못 했지만, 아무튼 그랬다.

 

 

호숫가에 도착하지 정오가 한참 지난 시각이었다. 나는 근처 카페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문제는 어디서 그 앨 만날 것인지 감을 못 잡겠다는 거였다. 어쩌면 이번에도 엇갈리거나 아예 다른 도시로 이동하게 될지도 몰랐다.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도 있고 수요일까지는 공강이니 다른 도시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나저나 정말 어떡하지. 이러다간 단서도 못 찾겠는데. 길게 뻗은 호수를 창가에서 구경하며 나는 다시 한 번 그 애의 가방을 뒤졌다. 거울, 수첩, 사탕. 이 세 가지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가방에 숨겨진 예비 주머니가 있진 않을까 샅샅이 살펴도 소용없었다.

 

결국 세 가지로 어떻게든 나머지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적색 수첩은 화려한 무늬가 표지에 그려진 것이었고, 거울은 밋밋한 무늬에 지극히 평범했다. 막대 사탕도 마찬가지였다. 껍질 벗겨서 입에 무는 그런 사탕.

 

거울하고 사탕을 아무 생각 없이 넣어두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히 어떤 단서이긴 할 텐데 도통 감을 못 잡겠다. 괜히 거울을 만지작거리다가 사탕을 살펴보기도 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아까운 시간이 점점 흘렀다. 이러다가 아예 못 만나는 거 아닐까?

 

초조한 마음에 수첩을 다시 한 번 펼쳐보다가 무심결에 손가락에 눈이 갔다. 아까는 없던 검은 얼룩이 묻어 있었다. 표지를 만지던 손가락이었다. 수첩을 덮고 표지를 보자 적색 바탕에 검은색 무늬가 가득 그려진 모양이 들어왔다. 표지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훑자 검은 가루가 긁혀 나왔다.

 

그러니까 이건 원래 표지가 아니라, 누군가가 일부러 위에다가 무늬를 그려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뻔했다.

 

왜 그렸던 걸까, 생각하며 무늬를 유심히 살폈다. 이상한 문자 같은 게 눈에 띄기도 했지만 한글, 영어, 한자 셋 다 아니었다. 그 애가 라틴어나 인도어, 러시아어나 기타 제2외국어를 따로 공부 중이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 그 쪽도 아닐 것이다.

 

그나저나 이 문자는 Y랑 비슷하네.’

 

Y를 뒤집어놓으면 꽤 그럴듯한 글자가 수첩 중심에 그려져 있었다.

 

순간 번뜩이는 생각이 내 손에 거울을 쥐게 만들었다.

 

수첩에 있는 글자들이 반사되도록 거울을 기울이자 수많은 모양 중 유일하게 읽을 수 있는 문자가 비쳤다.

 

FERRY

 

나무로 대충 만든 나루터와, 거기에 묶여있던 낡은 배가 언뜻 눈에 스쳐 지나갔다. 호수를 둘러보며 넘겼던 곳이었다. 나는 물건을 쓸어 가방에 넣고 카페를 나섰다.

 

빠른 걸음으로 나루터를 향했다. 느긋하게 흔들리는 배와 호숫가에 차오른 물결이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이리저리 돌아보자 나무로 지은 바닥에서 불길한 소리가 났다.

 

진짜 풀었구나.”

 

익숙한 목소리에 뒤돌자, 금요일 오전부터 보지 못했던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바로 너였다.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어 동그란 얼굴이 잘 드러났다. 하얀 원피스, 카디건도 잘 어울렸다. 마치 소풍이라도 나온 듯 가볍고도 산뜻한 옷차림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깜짝이야……

 

장난기 가득한 미소에 놀란 척 가슴을 붙잡는 것으로 응수해주었다.

 

내 수수께끼 어땠어?”

어렵더라.”

나는 너무 엉성하게 낸 거 아닐까 걱정했는데…… 근데 정말 신기하다. 이렇게 얼굴을 보니까.”

 

눈빛이 반짝반짝하다. 호수가의 물결이 갑자기 온화한 봄바람처럼 느껴졌다. 물비린내는 향기로웠고 끼익 거리는 나무 바닥의 소리는 정겹게만 들렸다.

 

어떤 수수께끼가 제일 재밌었어?!”

…… 처음에 전화 건 거?”

 

제일 알아차리기 수월해서 재밌었다. 나머지 단서들은 잘못 끼워 맞추면 어떡하나 조바심에 즐길 새도 없었다.

 

사탕은 어땠어? 은근히 공들인 건데.”

? 사탕?”

 

어리둥절한 내 반응에 덩달아 놀랐는지, 순연한 눈매에 의문이 가득 차올랐다.

 

시간 맞춰온 거 아니었어?”

아니…… 그냥 바로 온 거였어.”

 

새하얀 얼굴에 놀라움이 서서히 번졌다. 내 품에 있는 가방을 건네받더니, 포장지째 그대로 있는 막대 사탕을 꺼내드는 손길은 급하기까지 했다.

 

우리 우연히 만났구나……

 

단서를 풀지 못했다는 아쉬움보다 우연에 경이를 느끼는 것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신기하다고 맞장구쳐주자, 작은 손가락이 사탕 포장지를 벗기더니 내 앞에 들이밀었다.

 

펴서 봐봐.”

 

시키는 대로 자글자글한 주름이 가득한 사탕 포장지를 최대한 펴서 살펴봤다. 내 눈에는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었다.

 

이렇게.”

 

너는 내 옆에 딱 붙어서더니, 저미는 햇빛 쪽을 향하도록 사탕 포장지를 들었다.

 

.”

 

석양이 촘촘한 구멍 사이를 스쳐지나갔다. 바늘로 콕콕 찍어 만든 문자가 거기에 있었다.

 

PM 5:30

 

저미는 태양의 색으로 쓰인 시간에 웃고 말았다. 사탕 포장지를 까서 바늘로 콕콕 찍은 후 다시금 감쪽같이 포장하느라 온갖 공을 들였을 네 모습이 상상되어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너는 웃지 말라며 핀잔을 주다가 작게 속삭였다.

 

소원이 뭐야?”

 

그렇게 묻는 얼굴도, 석양의 그림자에 물들고 있었다.

 

못 풀었는데 들어주게?”

이렇게 만났잖아.”

 

나는 입술을 벌렸다가 다물고 말았다. 소원을 그냥 말하면 될 일이었다. 다음에도 네 수수께끼 풀면서 놀면 좋겠다고.

 

나는 수수께끼 같은 거 잘 풀지 못하고, 머리 쓰는 일에도 소질이 없었다. 그래도 네가 기뻐해준다면 몇 번이고 어울려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다음의 수수께끼도 내게만 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절대 말할 수 없고, 말해서도 안 되지만 수수께끼 또 내 달라는 말은 괜찮았다.

 

그냥 무게감 없이 말하면 된다.

 

……

 

뭘 망설이는지 입술이 점점 무거워져만 갔다. 내 말을 기다리는 네 얼굴에도 무게감이 깊어져갔다.

 

사실 내 소원은. 수수께끼 또 내달라는 게 아니었다.

 

그냥 나를 좋아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하지만 그런 소원은 네게 너무 무거웠다. 행간을 못 읽는 나여도 알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에다가 엄한 부모님을 두었고, ‘자녀들아 순종하라따위의 구절을 항상 마음속으로 새겨야하는 너에게, 그런 소원을 빈다는 게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그냥, 또 이렇게 놀았으면 좋겠네.”

 

겨우 해냈다.

 

…… 그래. 그 정도야 들어줄 수 있지.”

 

어째선지 너는 당황한 것 같았다. 평소와 달리 애매하게 띄워진 미소가 그랬다.

 

가자. 배고프다.”

내가 저녁 사줄게!”

 

우리는 나루터를 벗어났다. 두 사람의 발소리에 나무가 더 시끄럽게 삐그덕거렸다. 호수의 물결은 이따금 배의 몸뚱이를 찰싹찰싹 치며 소리를 냈다. 물 비린내는 더 짙어졌다. 아름답던 석양의 빛깔은 먹물을 섞은 듯 어두워지더니 저녁의 색으로 탈바꿈했다.

 

잠깐의 수수께끼가 걸었던 마법이 이제야 풀린 것이다.

 

사실 수수께끼 같은 거 싫어하지 않아?”

 

문득 네가 그렇게 말할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

 

당황해서 표정을 다 드러낸 나와 달리, 저녁이라 어두운데다 잎이 풍성한 나뭇가지의 그림자까지 겹쳐진 네 얼굴에는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수수께끼 싫어한다고, 신입생 환영회 때 그랬잖아.”

그게 언제 적 얘긴데…… 네 얘기 듣다보니 좋아진 거지.”

 

너는 잠시 말이 없었다. 나는 어째선지 어색해진 분위기에 식은땀을 흘렸다. 선의의 거짓말도 결국은 거짓말이다. 양심이 찔렸다.

 

나는……

 

네 목소리는 어딘가 불안했다. 떨림을 억누르려는 것 같기도 했다.

 

좋아해.”

 

심장이 멈춘 것 같았다.

 

……너한테 수수께끼 내주는 거.”

 

작게 단서처럼 말이 붙었다. 이번엔 멈추었던 심장이 요란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눈이 팽팽 돌고, 다리에 힘이 잘 안 들어가서 걷는 자세가 어색해졌다.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입을 여는 순간 헛소리만 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너는 내 침묵에 도리어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가자.”

 

너의 표정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던 밤이 갑자기 별빛과 달콤한 바람이 가득 찬 시간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손을 잡고 짧은 숲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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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밀M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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